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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그 참을 수 없는 야들야들함

by 과장Lee 2022. 4. 19.

 

 

족발 찬가

야들야들하다. 이보다 더 족발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반들반들 윤기가 돌고 보들보들한 자태를 뽐내는 고기가 접시에 담겨 나왔을 때, 과연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급하게 한점 입에 넣었을 때 쫄깃한 식감과 간장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그 감칠맛은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게 만든다.

족발은 다양하게 먹는 재미가 있다.
젓가락으로 그냥 한 점씩 집어먹어도 맛있고, 고춧가루 살짝 탄 새우젓에 찍어 짭짤한 감칠맛을 더해도 좋다.
고기를 먹다가 조금 느끼한 기분이 들면 백김치나 빨갛게 버무린 무말랭이를 아삭아삭 먹어보자.
그렇다면 마치 가글 한 것처럼 청량하게 입가심되어 언제 먹었냐는 듯 족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욕심내어 상추 위에 두 점을 올려보자. 잘 무쳐진 부추와 알싸한 생마늘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조심스레 쌈을 싸 보자.
준비가 되었다면 턱을 살짝 풀고 입으로 돌진한다.
아 잠깐! 청양고추를 깜빡했다.
입이 움직이기 전에 매콤한 청양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함께 씹는다면 입안의 그 풍미가 이보다 다채로울 수 있을까?

 

 

공덕동 족발 골목에 대한 추억

종종 족발을 먹을 때면, 공덕동의 족발 골목이 떠오른다.
지금은 가본 지 오래되었지만, 대학생 시절 공덕동의 족발골목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기울이던 추억이 아련하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배불리 먹기 위해 우리는 전철을 타고 40분을 이동하여 공덕동으로 향하곤 했다.
단골집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공덕동 족발 골목에 들어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들어가 자리를 잡아도 무조건 성공이었다. 주머니가 풍요롭지 않은 그때, 돈을 각출하여 족발을 시키면 순대와 부속고기, 순댓국을 무한으로 리필해 준다는 점이 그렇게도 좋을 수 없었다.
두둑한 안주와 함께 소주를 마시며 취할 때까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게 취해서 함께 기숙사로 돌아오면 더 이상의 행복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추억 탓일까, 족발을 먹을 땐 꼭 그때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진하게 생각나 소주 맛이 더 달게 느껴진다.

 

 

피난민 할머니들이 시작한 족발

장충동 족발집에 원조라는 말이 빠져있으면 왠지 서운하다.
원조 장충동 족발, 이는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 온 할머니들이 1960년대부터 생계를 위해 장충동에서 족발을 만들어 팔던 것으로부터 기원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유형의 족발이 바로 이 할머니들이 만들던 황해도의 갱엿 돼지족 조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갱엿 돼지족 조림은 간장, 갱엿, 향신료 등을 넣은 간장국을 만들고 따로 한번 삶은 돼지 족을 넣어 끓이며 장국을 끼얹어가며 서서히 조린다. 다만 이북에서 온 할머니들은 처음부터 돼지족을 간장국과 함께 조리는 방식으로 조리법을 간소화했다.
이렇게 시작된 장충동 족발은 1963년 장충체육관이 개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장충체육관에서의 레슬링, 권투 등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관람하던 사람들은 장충동 족발골목으로 향했다.
승리자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축배를, 패배자의 편은 위로의 술잔을 들며 족발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저렴하고 푸짐한 돼지족을 이용한 이 요리는 이렇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해 오늘날의 대중적인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족+족? 발+발?

족발. 참 특이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의 측면에서 소의 발은 우족, 닭의 발은 닭발이다.
하지만 이 음식은 돈족이라고도, 돼지 발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돼지의 의미는 없고 발을 뜻하는 한자와 우리말이 합쳐져 족발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왜 그런 걸까?
정확하게 확인된 바는 없지만 몇 가지 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나는 한자나 한글 한 가지만 알아도 의미를 알 수 있게 같은 뜻의 한자와 한글을 병기했다는 설,
또 하나는 나막신을 신는 일본인의 멸칭인 쪽발이라는 단어에서 돼지 굽의 모양이 유사해 족발이라는 단어로 와전되었다는 설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가장 수긍이 가는 설이다. 살아있는 돼지의 발을 일컫는 돼지 발과 구분하기 위해 식용으로서의 의미로 돈족, 족이라고 부르다가 좀 허전하여 입으로 족발이라고 말하다 굳어졌다는 설이다.
허전함 때문에 족발이라는 단어가 되었다는 무슨 말인가 싶지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이해가 충분히 된다.
소리 내어 읽어보자. 돈족, 족, 돼지족, 돈발... 뭔가 허전하고 재미가 없다. 하지만 '족발'을 소리 내어 발음해보라.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하면 '족빨'이다. 기역 받침과 비읍이 만나 족빨이라는 된소리로 발음되며 더욱 찰지고 생동감 있는 소리말이 이루어졌다.
쫄깃쫄깃하고 탱탱한 이 음식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재미있는 가설이다.

 

 

장충동으로부터 우리 동네까지

한국인은 음식에 대해 정말 창의적이다. 장충동에서 할머니들이 시작한 족발은 현재 마늘족발, 불족발, 냉채족발 등 다양한 메뉴로 개발되어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그 덕에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개발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렇지만 나는 간장 향미가 은은하게 배어들어간 원조 족발이 제일 좋다.
화려한 타격을 주는 맛도 가끔 좋지만, 우리 민족의 애환이 함께 전해 내려온 맛이 깃들은 그 본래의 순수한 원조 족발이 참 좋다.
족발, 소주 한잔과 어울리는 그 한점, 어떠한 곁들임과 함께 먹어도 입안에서 맴도는 그 풍미와 식감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반드시 장충동이나 공덕동에 가야만 족발을 먹는다?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족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족발은 대중적이면서 친근한 음식으로서 우리에게 가까이 자리 잡았다.
바로 오늘, 가족들과, 친구와, 혹은 혼자서 야들야들하고 맛있는 족발로 하루의 지친 심신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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